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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투석전이 벌어진 거리에서 한 청년이 나뒹굴고 있다. 주변 계엄군의 서슬에 겁을 먹은 여성은 그를 도울 수도 지나칠 수도 없다. 

불과 몇 m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계엄군이 철모를 내려놓고 방독면을 고쳐 쓰고 있다. 무자비한 진압작전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1980년 5월 20일 전남 광주시 금남로.



광주 송정리역 광장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시민군이 금남로로 향하는 버스에 앞다투어 올라타고 있다.



19일 광주 금남로에서 벌어진 시위 도중 한 시위대가 계엄군에 의해 체포되고 있다.



20일 밤 광주 지역 택시운전사들이 택시 200여대의 전조등을 켠 채 금남로 방향으로 차량시위를 하고 있다.








저항의 끝은 처절한 죽음이었다. 27일 오전 전남도청 진압작전에 나선 계엄군이 사살된 시민군의 주검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과 시민이 무참히 사살되었고 산 자는 ‘폭도’로 몰려 갖은 고초를 겪었다. 

27일 전남도청에서 체포된 사진 속 청년 역시 계엄군이 즉흥적으로 쓴 죄목에 의해 운명이 결정지어졌을 것이다.



5월 20일 금남로에서 치열한 투석전이 벌어지는 동안 골목 식당 앞에선 시민들이 큰 솥을 걸고 시민군에게 줄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21일 광주 시내 한 골목길에서 간헐적인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어린 아이가 창문 틈으로 이를 구경하고 있다.



24일 광주 금남로변에 붙은 부상자 및 사망자 명단 앞에 군중이 모여 있다.



시민군이 광주 시내를 장악하고 있던 24일 계엄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세간살이를 리어카에 싣고 광주를 떠나는 ‘피난’행렬이 이어졌다.



24일 광주 시내의 한 점포 앞에 부고를 알리는 표지가 붙어 있다.










박태홍 전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가 잘 못 됐을 경우에 대비해 품고 다닌 신원 확인용 메모와 기자로서 자괴감을 토로한 일기의 일부.



도청 진압 작전 다음 날인 28일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탱크를 지나는 노인들의 표정이 어둡다.



29일 망월동 시립묘지에서 유족이 희생자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80년 광주에선 슬픔마저 일상이 됐다. 24일 상복을 입은 유족들이 철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 중인 박태홍 전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